전 광주효광중학교 김선호 교장

20여 년 전, 공산주의는 이미 망했다는 것이 증명되었다. 원인 분석이야 학자들의 견해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획일성, 통일성, 일체성, 경직성 때문이었다고 보아도 과언을 아닐 것이다.

어느 누가 “공산주의 국가인 북한은 망하지 않고 존재하고 있다.”고 대꾸해 온다면, 나는 “지금 망해가고 있고, 지금과 같은 상태가 계속 유지된다면 머지않아 망할 것이 확실하다.”고 단언할 수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요지부동의 획일성, 통일성, 일체성, 경직성 때문이다.

북한에는 오직 통수권자 개인의 인격과 인권만 있지, 소위 인민들의 인격과 인권은 존재하지 않는다. 김정일의 입장에서 본다면 온 백성이 일사분란하게 움직여주니 기쁘고 감탄스러울 것이다. 그러나 백성들은 굶어 죽어가는 지경에 이르면서도, 저항은커녕 충성만을 외치고 있으니 우리 눈으로 보기에는 답답할 뿐이다.

학교에서도 어처구니없는 일이 가끔 벌어졌던 적이 있었다. 30여 년 전 대한민국 모든 학생들에게는 손으로 들고 다니는 가방밖에 없었다.

그런데 어느 학부모가 외국 여행길에 등에 메고 다니는 가방을 보고, 무겁게 들고 다니는 가방보다 더 편하고 좋을 것 같아서 선물로 사왔다. 아이는 좋아서 등에 멘 가방차림으로 등교하다 교문에서 걸렸다.

다른 변명이 필요 없었다. 천만 학도가 들고 다니는데, 혼자 메고 다니는 것은 위반이라는 것이다. 유기정학을 받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코웃음이 나온다. 그것뿐만이 아니다. 희거나 검은 운동화만 신어야 했던 시절이 있었고, 지정해준 색상 이외의 양말만 신어도 처벌했던 시절이 있었다.

멀지 않은 시점, 바로 전임 지 학교에서의 일이다. 여학생들의 긴 머리는 묶고 다니도록 규정되어 있는데, 풀고 다닌다고 아침부터 호통이다. 내가 직접 머리를 묶고 푸는 것은 학생들의 자유의사에 맡기자고 호소했다. 더우면 묶고, 추우면 풀지 않겠는가? 그렇게 하기로 했다. 머리 때문에 호통 칠 일이 대폭 줄어들었으니, 학생들은 명랑해지고 선생님들은 스트레스를 훨씬 덜 받게 되었다. 이와 유사한 것들이 많다.

옛날, 죄수와 같은 빡빡머리에서 아주 짧은 스포츠머리까지 오는데 30여 년이 걸렸고, 조금 더 긴 머리까지 오는 데는 반세기가 넘게 걸렸다. 우리 기성세대들의 시각으로 보면 눈엣가시 같은 것들이 비록 머리뿐만이 아니다. 빨간 넥타이만 매고, 빨간색 양말만 신어도 빨갱이로 색칠을 하더니만, 최근까지도 촛불을 든 사람들은 모두 좌파이고 배후 조종을 받고 나온 사람들이라고 몰아붙이는 것을 보니 어안이 벙벙하다.

우리는 교육에서 항상 다양성, 개성, 자율성, 창의성 등을 강조한다. 또한 인간의 생명은 무엇보다 귀중하며, 그러기에 개인의 생명은 우주의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가장 고귀한 것이라고 가르친다. 정작 그렇게 가르치면서 현실적 지도는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다. 한 생명이 독특하고 유일하게 가지고 있는 개성과 인격과 인권을 무시하거나 유린하는 경우가 아직도 허다하다.

학교의 강제적 방과후학교 수업 참여와 강제적 야간 자율학습은, 특별한 성격과 개성을 가진 학생들을 견디다 못해 죽음으로까지 몰아넣게 하고 있다.

최근 이 나라의 유수한 석학들이 망둥이처럼만 보였던 촛불소녀들을 보며 희망을 노래하고 있다. 자기의 생명을 건드린 정부를 향해 “미친 소, 너나 먹어!”라고 외치며 촛불을 들었기 때문이다. 이 말 한마디가 백 만 개의 촛불을 들게 한 것이다.

“광우병 쇠고기 수입 결사반대”라는 플래카드를 들었을지도 모르는 386세대들의 구호로는 백만 개의 촛불을 모이게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참으로 대단한 아이들이다. 이들이 지금 세계 민주주의 변천사를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발전시켜가는 계기를 만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사실인지는 모르겠지만, 일각에서는 지지리 공부도 못하는 학생들이 갈 곳이 없어 못된 사람들의 조종을 받아 촛불이나 들고 있다고 몰아붙이고 있다. 그런데 이 촛불소녀들이 발동을 걸어 민주주의 변천사를 새롭게 쓰고 있으니 어찌하랴!

우리가 부모님을 비롯한 어른들에게 불안하게 보였던 것처럼, 우리의 아이들이 지금 우리에게 그렇게 보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그런 우리가 변하고 성장해서 이 사회와 국가를 유지하고 지켜가는 것처럼, 지금 불안한 모습으로 보이는 아이들이 자라서 이 사회와 국가를 지켜갈 것이다.

그들은 그들 나름의 생각과 고민 속에서 인생설계를 가지고 살아가고 있는데, 단지 우리가 너무 염려하고 있는 것이리라. 어찌하든 간에 시간과 시대가 흘러감에 따라, 우리 기성세대가 원하건 원하지 않건, 어린 학생들은 시시각각으로 언어와 행동과 사고가 변해가고 있다.

그렇기에 우리는 청소년들을 어떻게 바라보고 지도할 것인가에 대해 깊이 생각해야 할 것이다.

학생들을 교사의 손아귀에 넣고 지시와 명령에 잘 복종하게 하고, 필요 이상의 규칙 속에서 숨 막히는 삶을 살아가게 하고, 자기의 의견과 소신을 접어가면서 맹목적 신봉자가 되게 하고, 마치 북한의 4대 군사노선처럼 사고의 경직화, 행동의 통일화, 인격의 획일화, 인권의 축소화를 통해 조용하고 변화 없는 가운데 평안하고 안일한, 발전 없는 삶을 살아가게 할 것인가, 아니면 다소 시끄럽고 힘들고, 더디더라도 사고의 유연화, 행동의 개별화, 인격의 특성화, 인권의 신장화를 통해 자율성을 발휘하며 살게 할 것인가를 생각해야 할 것이다.

우리의 교육이론 그대로, 지금보다 더 폭넓은 자율성을 부여하고 다양성, 개별성, 독창성, 창의성, 유연성 등을 인정하고 지도하는 가운데 인격과 인권을 신장시켜 준다면, 문화가 세계를 지배하게 될 것이라는 21세기를, 우리 청소년들이 잘 어우러져 살아갈 수 있을 것으로 확신한다. 나름대로 지키고 넘지 않아야할 선을 잘 알고 있는 그들을 믿고, 그들의 뜻을 마음껏 펼칠 수 있도록 인권 신장의 폭을 더 넓혀주면 좋겠다.

▶ 교육 경력
· 교사(광주제일중학교, 광주제일상업전수학교, 천안북일고등학교,
· 청산중학교, 완도중학교, 보성복내고등학교, 전남고등학교,
· 전남공업고등학교, 광주선명학교, 광주선광학교)
· 교감(월곡중학교, 광주화정중학교)
· 교장(신가중학교, 광주효광중학교)
· 교육의원(광주광역시의회)
· 이사장(동아여자중·고등학교)

▶ 저서
· 미래를 향한 광주교육의 어제와 오늘 1권, 2권, 3권
· 우리의 후손인 젊은이들에게
· 버림받은 교사들이 이 나라를 살려낼 것이다.
· 지금부터라도 잘해보고 싶은 사람 다 모여라.
· 국민 여러분 이것은 아니올시다.
· 김마담과 근로정신대